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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단양 마늘순대 감자수제비 제천 시래기국 시래기밥 산초두부구이 돼지갈비튀김
    TV속정보 2020. 1. 21. 00:16

    추위가 막 시작될 무렵 성북동을 찾았던 것 같은데 벌써 그도 한 달 보름 전 여행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겨울 한복판에서 이번엔 중부 내륙의 중심, 제천과 단양을 찾았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분위기 좋은 동네-
    이 고장의 멋진 풍광과 어울리는 잘생긴 조연우 씨가 이번 내 여행 메이트다.
    충북 여행은 처음이라는데 그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해줄 수 있을지 잠시 걱정이 앞서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고르고 고른 곳이니 아마 만족스러우리라 자부한다.

    첫 장소는 길가에 늘어선 시래기 그늘이 눈길을 끄는 곳-시래기밥과 시래깃국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가게 업력은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맛이 어찌나 좋은지 제천역에 들르는 코레일 직원들에겐 반드시 가야 하는 맛집이라나?
    아니나 다를까- 들어가면서부터 느낌이 좋다. 지난 가을 수확했다는 단무지 시래기가 오동통하니 잘 말라있고, 직접 담근 장아찌가 눈길을 끈다.
    당근, 여주 등  장아찌로 잘 담지 않는 채소를 장아찌로 만들어 찬으로 내놓는데- 본연의 재료 맛을 살리기 위해서 수년 간 연구했단다.
    어쨌든 주인공은 시래기 밥과 시래깃국! 잘 말린 시래기를 깨끗이 씻어내 삶은 다음 그 시래기로 밥을 볶거나 국을 끓이는데 빤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맛이 상당히 괜찮다.
    조연우 씨도 보아하니 굉장히 만족한 눈치. 식감이 살아있으면서도 질기지 않은 시래기의 맛도 맛이거니와 들기름, 참기름을 같이 써서 볶았다는 밥이 꽤나 구수해 훌륭하다.
    국은 또 어떤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시래깃국의 차원을 넘어섰다. 집 된장의 구수함도 살아있고, 뭔지 모를 감칠맛이 입 안에 감돈달까-
    슬쩍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생 가자미’를 넣은 육수로 끓였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재료- 국물에서 생선 비린내는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다. 
    뭐 가자미 외에도 이것저것 넣었다고는 하는데 이만한 맛을 내려면 재료보다도 주인장의 타고난 감각이 더 중요할 터-
    이는 필시 친정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게다. 주인장의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다 보니 생선국을 즐겨 했다는 게 그 반증.
    역시 제아무리 오래 요리한 사람일지라도 타고난 이는 못 이긴다. 이 집은 그걸 증명하는 집이다. 
    오래 두고 보아도 만족할만한 곳... 부디 그 가치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봐주길 바랄 뿐이다.

    다음은, 조용한 시골마을을 점심시간이면 붐비게 만드는 두부집을 찾았다. 외관은 뭐랄까... 식당이 맞나 할 정도로 비닐하우스 형태에다 간판도 조그마하게 달려있는데
    두부가 나오는 시간이면 이곳이 어느새 차로 꽉 찬다. 어떻게 여기까지 알고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신기할 따름. 
    이곳에선 순두부를 비롯해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눈에 띄는 메뉴는 ‘산초 두부 구이’. 옛 제천에는 산초가 지천으로 널려 집집마다 기름으로 보관했다더니
    그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 두부를 구울 때 산초기름을 쓴단다. 
    처음엔 이 향이 강한 산초기름이 두부 맛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먹다 보니 음? 생각보다 괜찮다.
    들기름처럼 구수한 향도 나고 익숙해진 건지 향도 없다. 기본적으로 두부 자체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보니 어떤 요리에 들어가도 잘 어우러진다.

    들기름에 채소를 볶은 뒤 두부와 버섯, 파만으로 맛을 냈다는 두부찌개도 반전의 맛. 시뻘건 국물 색깔에 맛이 뾰족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밋밋한 느낌은 아니고 적당히 감칠맛이 돌면서 고소하달까.이 두부찌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제천에 올 가치가 있다.
    이 집이 시내에 있었다면 오히려 그 매력이 반감됐을 터-참으로 이 시골구석에 이런 보물 같은 집을 찾아다니는 게 백반기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여행 삼아 슬쩍 들른 곳에서 맛본 음식은 설탕을 싫어하는 내가 오로지 즐겨하는 설탕 음식- 바로 도넛과 찹쌀떡이다.
    이 집에서 오래 전에 일했다는 제천 토박이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오던 어린 아이가 이제는 엄마가 돼 찾게 됐다는 손님까지-
    연령불문 성별불문 단골들로 문전성시라는 55년 된 이 분식집은 제천을 찾는 이에게 제일 먼저 추천해준다는 제천의 명물이다.
    사실 특별한 맛은 없다. 좋은 찹쌀, 좋은 팥, 손기술... 그게 다다.  그럼에도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어릴 적 먹던 ‘도나쓰’와 ‘찹쌀떡’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
    시어머니에게 전수 받은 방식 그대로 음식을 만든다는데 그래선지 60년 전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다음은 단양의 겨울산 한 가운데 숨어있는 식당을 찾았다. 가는 길도 그렇고, 가게 형태도 그렇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
    그런데 진짜 보물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들깨 베이스의 국물 안에 숨어있는 감자 수제비를 찾아 맛보는 것도 보물을 찾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 사이사이 숨어있는 노란 건더기가 정말 보석 같다.
    네모나게 생긴 건더기가 보드라우면서도 씹는 식감도 있어 처음엔 고긴가 싶었는데- 이게 무슨 맛이지..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옆 손님이 슬쩍 황태라고 알려주는 게 아닌가?!
    아~ 듣고 보니 이건 황태의 맛이 틀림없다. 황태의 맛을 이렇게도 조리할 수 있다니-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 안에 들어간 모든 재료가 다 이 근방에서 나는 것들이다. 해발 4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재배한다는 단양 감자도 그렇고, 근처 강원도에서 공수해온 황태, 산에 지천으로 난다는 쑥,
    그리고 주인장 사촌에게서 얻어온 들깨까지. 흔하디흔한 재료를 이용해 이 훌륭한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니 주인장의 능력이 뛰어나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적은 재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법에 대해 따로 배운 것만 같다.

    다음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외관과 내관을 갖춘 집이다.대를 이어 60년째 성업 중이라는 이곳은 제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봤을 중식당.
    밑동만 남았다는 도마와 흙이 무너져 고르지 않은 화덕, 옛날식 스위치가 이 식당의 역사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그냥 단순히 역사만 오래된 것이 아니다. 도마를 내리치는 모습 하며 웍질을 할 때 자세까지-
    이집 주인장, 아버지에 이어서 수십 년째 주방을 지키고 있다더니 실력이 범상치 않다. 

    메뉴 또한 독특한데 중국집에서는 선뜻 떠올리기 힘든 ‘돼지갈비 튀김’. 돼지갈비를 생전분에 버무려 튀긴 뒤, 마늘과 파로 만든 소스를 얹어준다.
    깐풍갈비라고는 하나 우리가 아는 깐풍기와는 다른 느낌. 어쨌든 기름에 튀기면 고무신도 맛있다고 하지 않나-
    갈비 역시 기름에 튀기니 바삭하고 고소하다. 다만 갈비 특성상 조금 질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치아가 안 좋으신 분들은 조심! 
    그래도 어디서도 먹어보기 힘든 뼈째 튀긴 갈비를 맛볼 수 있어 제천을 찾는다면 한 번쯤 들러도 좋을 것 같다.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맛. 어디서 맛 봤나 했더니, 오! 조연우 씨가 답을 찾았다! 한창 유행하던 마늘치킨과 닮았단 것.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이집 왕만두도 추천한다. 고기를 다지지 않고 잘게 썰어 부추와 양파 등을 넣고 소를 만들었다는데 우리 옛날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다.
     배곯던 시절 이거 하나면 충분히 배가 불렀던...밀가루 두둑하고 속 꽉 찬 왕만두. 이거 만들기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데 아직도 이 음식을 유지한다는 게 뚝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역사가 오래되고 찾는 이가 많다고 해서 편한 음식 위주로 영업하는 게 아니라 손이 더 가더라도 아버지대의 음식을 유지하는 화교 남매의 자존심-
    이 집이 버틸 수 있는 이유 같다.

    마지막은 돌고 돌아 다시 단양으로 왔다. 마늘로 유명한 도시답게 가는 곳마다 마늘 음식이 가득하다. 마늘 닭강정, 마늘 떡갈비, 마늘 만두...
    여기까지 마늘 음식을 안 먹고 가면 섭하지 않겠나? 그래서 마늘 순대를 처음 내놓은 원조집을 찾았다. 보통 마늘을 파는 상점들 사이에 오롯이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
    요즘 같이 마늘을 판매하지 않는 시기에는 거의 죽은 상권이나 다름없는데 이집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그만큼 맛이 보장됐단 소리겠지-

    전통시장에 있는 가게인 만큼 구조도 독특하다. 보통 식당과는 달리 가정집처럼 방에서 방으로 꼬불꼬불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이 집에선 마늘 순대 말고도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있다고 하는데 모든 손님들이 입 모아 극찬하는 그 메뉴- ‘곱창전골’이다.
    일단 주인공인 마늘순대부터 한 입! 으잉? 그런데 이건... 그냥 찹쌀순대? 끝에 알싸한 맛이 올라오는 것 외에는 마늘향이 전혀 나지 않는다. 생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넣었는데 아마 쪄지는 과정에서 마늘 향은 사라졌나 보다.
    들어올 때 순대를 찌는 밑 물을 뼛국물을 쓴다고 하더니 그 육수가 마늘 향을 덮었나 보군. 마늘을 즐기지 않는 어린 아이들도 잘 먹을 것 같다. 물론 마늘을 넣어 물리지도 않고-

    그런데 이집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는데- 손님들 추천을 받길 잘한 듯! 곱창전골이 압권이다! 들깨가루를 많이 얹었음에도 텁텁하지 않고 맑다. 어떻게 끓인 거지?
    곱창부터 오소리감투는 또 얼마나 괜찮은지!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나고 느끼하지도 않다. 곱창은 느끼한 맛 때문에 선호하는 음식은 아닌데 이 집의 곱창만큼은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듯 하다.
    곱창전골에 순대를 적셔먹으면 국물이 스며들어 더 좋은 순대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밥을 말기까지 하면 이거야 말로 완벽한 한끼가 아닌가 싶다.
    사실 충청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맛- 그래서 특색이 없는 음식... 이게 충청도의 이미지였다.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그런 선입견이 사라졌다. 곱씹을수록 맛있는 맛, 그래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충북 단양·제천 음식- 이토록 맛있었나?!

     

    1. 가마골 쉼터 (감자 수제비) 주소> 충북 단양군 가곡면 새밭로 547-8 연락처> 043-422-8289
    2. 덩실 분식(찹쌀떡&도너츠) 주소> 충북 제천시 독순로6길 5 연락처> 043-643-2133
    3.제천 시락국 (시래기국&시래기밥) 주소>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2길 16 연락처> 043-642-0207
    4. 시골 순두부(산초구이, 두부찌개) 주소> 충북 제천시 두학동 578 연락처> 043-643-95220
    5. 송학반점 (돼지갈비 튀김, 왕만두) 주소> 충북 제천시 의병대로 12길 7 연락처> 043-646-2038
    6. 대산원조마늘순대 (마늘 순대, 곱창전골) 주소>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전5길 32 연락처> 043-42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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